2023년을 돌아보며…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그 해 일어난 일을 시간별로 적어 한해를 돌아보고 그 다음일기에는 새로운 한 해를 위한 목표를 적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쓰는 2023년을 돌아보는 일기…
이 일기를 쓰는 지금은 파리 공항이고 뒤셀도르프를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처구니 없는 일때문에 일주일 동안 잠깐 한국을 다녀왔고, 프랑스와 독일은 한국보다 시간이 느린 덕택에 아직 새해가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기 지금은 2023.12.31 오후 7:30. 굉장히 졸린데 한번 적어보겠다.
2023.01
희주랑 소리랑 새해 첫 날을 길거리에서 맞이했다.
재밌게 놀고 가족들과도 즐거운 새해를 맞이했다. 어색하기만 했던 포항의 삶은 드디어 적응하기 시작해서 사람들과 조금은 친해졌고 같이 재밌는 추억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정출연의 최종 면접까지 봤지만 결국엔 떨어졌다. 면접을 보면서도 와 내가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나라고 감탄했었다. 그래서 이 면접에서 떨어진다해도 나는 아쉬움이 없었다. 그것이 내 최선이었다. 면접을 보고나서 혼자 맛있는 초밥도 사먹고 생일을 맞아 포항공대에서 내가 세미나를 하고 그 방 분들이랑 소고기를 같이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엄마랑 나현이랑 롯데호텔 뷔페를 갔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셨다. 맛있는거 많이 맥여드리고 싶다.
2023.02
1월의 마지막날 정출연에 떨어졌다라는 최종 소식을 듣고 나서 작년 12월에 해외 포닥 면접을 봤던 2군데 중 한 곳을 가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직을 해야겠다고 말씀 드리는 과정이 조금 힘들었다. 나의 직속 상사님은 이미 어느정도 알고 계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라고 말씀 드리니 그래요 저는 아쉽지만 좋은 결정인것같아요. 라고 말씀해주셔서 한결 마음이 편했지만, 포항 박사님께 말씀 드리는 건 뭔가 좀 어려웠다. 온지 얼마 안되었는데 벌써 가버린다니 그리고 이제 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에잉 몰라 ㅠㅠ 하면서 말씀 드리고, 포항에서 강원도 학회가는 길까지 함께 하면서 뭔가 시원섭섭한 박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나도 마음이 안 좋아졌었다. 그래도 어쩌겠냐 여기서는 내 미래가 너무 불투명해보였다…ㅠㅠ
처음으로 전기화학과 관련되지 않은 학회를 갔었는데 세상에 똑똑한 사람은 참 많구나 그러면서도 내 주제가 꽤 다른 분야인데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았어서 기분이 좋았다.
곧 나간다는 생각에 포항에서 하고 있던일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일본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한달 동안 미친듯이 실험만 했다. 그러나 별 성과는 없었다 ㅠㅠ 그래도 나름대로의 시행착오 결과물과 노하우, 계획들은 정리할 수 있어서 정리해서 공유했었다.
2023.03
실험에 정신 팔려서 한국에서 독일 비자 받는걸 때를 놓쳤다. 정말 많은 걱정 끝에 가서 받기로 했고 집도 가기전 2주전에 겨우 구했다. 서류 작업도 대충끝내고 포항사람들과 진한 이별을 하고 포항에 있던 짐을 빼서 퇴직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대전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이때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거의 삼년을 사귀었지만 더 이상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슬펐지만 아직까지도 후회는 없다.
독일로 짐을 보내고 앞으로 한동안 못 볼 친구들과 광주친구들을 보고 나서 정신없이 독일로 떠났다. 독일로 가기전에 여러가지 돈을 내고 보니 거의 천만원이 증발해있었다. 후후🥲 공항에서 엄마랑 헤어지는 순간까지 이게 맞나 싶었다. 이제 정말 나 혼자 세상에 덩그러니 서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사람은 어떻게든 사는 적응의 동물이라고 3.28부터 독일이란 나라에 잘 적응해보려고 노력했다.
2023.04
본격적으로 독일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비자 문제, 은행개설 등등 어려운 고난들이 몇개 있었지만, 그래도 후배랑 2주동안 사는 동안 이곳저곳 돌아보던게 아직도 기억에 선명해서 초반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국은 6개월만 지나도 거리의 가게들이 변하는데 여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오고나서부터 날씨가 항상 맑아서 일찍 퇴근하고 마트로 산책하러 가는길이 너무 행복했다. 이것은 행복한 워라밸있는 삶이라는 건가 하면서 삶에 만족했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긴 여가시간으로 인해 외로움이 비집고 나오는 순간이 많아 새로운걸 시작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운동과 요리를 시작했다.
2023.05
독일의 가속기인 DESY를 한번 갔다 온 이후로 본격적으로 나의 일을 시작하게되었다. 처음으로 파이썬도 써보고 나름대로 나의 일의 발전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독일로 보낸 여름 옷 짐이 분실된 것은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고, 또 이렇게 뚱뚱한 채로 혼자 늙어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쇼파에서 일어나 바로 동네 헬스장을 등록 했다.
연구소의 정적인 분위기, 동네 거리의 맑은 분위기, 헬스장의 활기찬 소금기 넘치는 분위기들을 번갈아 생활하다 보니 몸 속 머릿속 염증들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운동이 이렇게나 정신건강에 좋은 거구나라는 것을 그때 깨닫게 되었다.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잠을 일찍 청하다 보니, 아침형 인간이 되어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퇴근해서 저녁은 스킵하고 운동을 하느 삶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2023.06
유월에는 아빠가 왔었다. 아빠가 오는 날을 착각해서 휴가도 잘못신청하고 기차표, 숙소도 잘못 결제했었다. 어떠한 돈도 못 돌려받았다…(이때 정신을 잘 차렸어야했는데..)
그래도 막상 아빠가 오니 기분이 좋았다. 나 혼자 구경했던 세상을 누군가에게 소개시켜주니 내 세상이 환상이 아니고 실제였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랑 독일 음식도 먹고 그 동안 쌓아왔던 요리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뿌듯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터 살이 잘 안빠지기 시작해서 주말에는 공복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1분만 달려도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계속 노력하다보니까 3분, 5분, 10분 그리고 그 이상으로 연속 달리기가 가능해졌다.
운동에서 이러한 성취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나 같은 몸도 가능한 일이었구나…! 운동 후 땀으로 더러워진 뒷모습을 보며 개운해했었다.
2023.07
머릿속에 존재하는 모든 레시피는 해본 것 같아서 새로운 레시피들을 도전해보았다. 아직도 도전해보고 싶은 식재료가 많지만 그런 새롭고 낯선 식재료와 맛에 대한 호기심이 미식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것 같다. 한국에서는 항상 자극적이게 짜고 맵고 단 것을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요리해서 먹다보니 치즈별로 다른 감칠맛과 쿰쿰함, 올리브오일 그 자체의 향기로움등이 재밌었다.
DESY에서의 1TB 데이터 정리가 대부분 정리되어서 나의 실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리뷰논문도 하나 썼다. 그러다가 논문 리비전이 와서 여기서 논문 리비전용 재료 합성이랑 실험을 하면서 연구소에 더 빠르게 적응 할 수 있었다.
7월 말에 지스트 친구들을 파리에서 만났다. 사실 그렇게 길지 않은 4개월 만에 만난건데 한 몇년 못 만난 사람들처럼 반가웠다. 너무 오랜만에 본 친한 사람들이어서 그랬나 그래서 모든 순간들이 재밌었고 행복했다. 디즈니랜드에서 함께 본 드론쇼랑 무서웠던 놀이기구 술마시면서 눈물 흘리며 보던 코코는 못 잊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양파수프랑 달팽이요리도!) 리멤버미~
2023.08
그래서 지스트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기전에 같이 독일 남부여행도 같이 다녀왔다. 뮌헨 양조장도 다녀오고 퓌센에 있는 성도 다녀왔다. 혼자였으면 굳이 다녀올 것 같지 않을 곳을 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팔월동안 리비전 실험과 내 실험을 정말 미친듯이 했다. 아침 7-8시에 나와서 거의 항상 마지막에 퇴근했다.
그러면서도 매일 매일이 나에게 고난같은 하루들의 연속이었다. 영어에 대한 답답함과 조금은 다른 문화 때문에 용기가 필요한 일들이 연속으로 있었다. 그럴때마다 아침을 먹으면서 보던 여행 유투브 영상이 의도치않게 나에게 큰 힘이 되었었다. 나도 저렇게 큰 일들을 별거 아니라는 듯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용기와 마음 가짐을 가져야겠다고 매일 생각했다.
리비전을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채로 하영언니와 체코 여행을 했다.
프라하는 정말 야경이 예쁜 도시였다. 하영언니랑 여행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예쁜 도시에서 독일에 없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마치 내가 하울의 가오나시가 된 기분이었다. 살이 빠져 예쁜 옷과 마음에 드는 화장을 하고 예쁜 사진을 여행지에서 찍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이 기분을 항상 모르고 살았구나…!!
그래서 사진 포즈 취하는 것이 항상 머쓱해서 언니가 교정해줬다. 감사합니다. 독일에서 마음껏해보지 못한 예쁜 카페 가보기, 술먹고 밤야경보면서 함께 사진찍기 등등 너무 좋았다…!
2023.09
체코에서 돌아오자마자 리비전을 시리얼만 먹으며 마무리 하고 이주후에 억셉 메일을 받았다. 정말 오랫동안 하던 연구였고, 지스트에서 했던 마지막 연구라서 정말 드디어 ! 훌훌 털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룹리더 형님께서 지금까지 결과 낸걸로 학회를 다녀오라고 하셔서 발등에 불 떨어진 느낌으로 또 실험을 열심히 했다.
(뭐지 맨날 논 것 같은데 정리하다보니 열심히 했네…;;;;) 그래서 아침에는 시리얼, 점심에는 주말에 미리 만들어놓은 도시락을 먹으며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23.10
그렇게 해서 스웨덴 학회에 다녀올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ECS 학회를 꽤 많이 왔었다. 오랜만에 온 국제 전기화학회라서 재미는 있었는데 항상 봤던 분들이 계시니까 뭔가.. 새로운 도파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감히 했었다.
거기서 한샘오빠도 만나서 재밌는 근황얘기도 하고 초밥집에서 둘이서 14만원 쓰는 플렉스도 했다. 차후 공동 연구 얘기까지 하며 아주 서로에게 알찬 대화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독일에 있는 한국인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오픈채팅방에서 만나 2030대의 여성분들을 몇몇 만났다. 약간 걱정했는데, 다들 미래지향적이고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시는 멋진 분들이었다. 나보다 어린 분들도 꽤 계셨는데, 내가 살 곳은 내가 정해! 이런 생각을 가진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이었다. 그 분들을 통해서 영원한 거주지=한국 이라는 생각이 조금은 깨지게 되었다.
또 독서토론 모임도 시작했다. (현재는 눈팅 중이지믄…) 내가 좋아하는 싯타르타를 그 분들에게 소개시켜주는 것을 시작으로 시작했는데, 책에 대한 폭넓은 배경지식과 배움에 대한 열망 그리고 신기한 관점을 가진 분들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정말 다들 멋진 분들이었다. (2024에는 좀 더 활발하게 독서 토론 모임에 참여해야겠다)
2023.11
나에게 인턴이 생겼다. 한번 그 분에 대해 일기를 썼지만, 그 분 덕분에 많은 나의 편협한 시각이 깨지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좋은 친구가 생겨서 너무 좋았다. 내가 말이 서툰데도, 나이차이가 꽤 나는데도 국적이 다른데도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 있다니 너무 신기했다. 서로 하는 개그가 다 웃겨서 맨날 깔깔 거리며서 실험했다. 그 친구도 나처럼 요리를 정말 좋아해서 내가 휴가 가기 전에 우리집에서 몇번 요리를 같이해서 먹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서로 많이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이때 내가 받은 이직 제안으로 인해 인터뷰를 볼때마다 이 친구랑 얘기를 했었다. 뭔가 나보다도 더 진심으로 고민하던 모습이 웃겼다.
영어=일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친구 덕분에 영어로 말하는게 더 재밌어졌고 살기위해서라기 보다는 내 생각을 더 잘 말하고 더 웃기고 싶어져서 영어공부에 진심이 되게 되었다. 요리하면서, 심심할 때마다 영어공부를 하게 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독일에 이 친구와 다 하지 못한 실험을 남겨두고 나는 한국으로 3주동안 휴가를 떠났다.
2023.12
한국에서 정말 먹고 싶었던 마라떡볶이랑 허니콤보를 도착하자마자 먹고,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 가족들도 보고 여행도 가고 꿈에 그리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들을 내친구들의 생각들을 교류할 수 있는 행복이 이렇게 큰 것이었지 하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한국에 있었던 일은 다시 써야겠다. 어쨌든 몸은 상당히 피곤할 만한 일정이었는데도 지금이 아니면 이 사람들을 못 만난다는 생각에 새벽에도 일어나서 친구들을 보고 중간에 뜨는 시간에는 커피샵에서 남모르게? 낮잠을 자면서 친구들을 만났다.
뿌듯하게 한국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독일로 돌아왔는데… 문제가 하나 생겨서 다시 한국에 잠깐 들어왔었다가 지금 다시 독일로 가고 있다. 다행히도 연말 마지막 주는 의무 휴가지만 … 내 아까운 휴가..와 돈… 어쩔 수 없지 ㅠㅠ
무튼 쓰다보니까 정말 길어졌다.
쓰다보니까 독일에 오기전에 내가 느꼈던 현타와 혼자라는 불안감을 다시 기억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정말 뭔가 막막했었다. 다 떨어지고 다 버리고 가는 그 기분…! 그래도 막상 나온 독일은 내 예상보다 훨씬 좋았고, 한국에서는 절대 터득할 수 없는 혼자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나의 내적 안정감과 건강에 굉장히 기여를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를 통해서 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것 같아 뿌듯하다.
올해는 그전처럼 일적으로 엄청난 성과가 있었던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절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겪고, 혼자 생각하면서 복잡한 나의 고민을 해체하여 인격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다. 그것들은 내 인생 전체에 있어서 훌륭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것과 새로운 사람과 지역에 가까워지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책이나 구전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일을 직접 겪으면서 내가 모르던 것을 진정으로 깨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만의 일상과 루틴을 유지해서 나의 안정감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