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기-3 (23.04 ~ 24.04)

독일 생활 끝 그리고 서울 살이 시작

H2쩝쩝박사 2024. 5. 14. 15:06

독일을 떠난지는 이미 2주째나 되었는데, 집 구하고 이사하고 그 동안 미뤄왔던 효도를 하느라 블로그에 소홀했다.

독일에서 1년하고 1개월을 보냈는데, 누군가 보기에는 그닥 길어보이지 않은 해외생활이긴 했지만 내 시야를 트이게 하는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물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더 큰 연구시설에서 연구를 해본다는 의의도 있지만 이것보다는 나는 내 가치관과 생활 방식을 교정하는 시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가치관의 변화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나만의 고유의 가치관을 형성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워낙 사람들끼리 밀집되어 살고, 모두들 특정된 삶의 방향,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쓰며 살다보니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 나를 편하게 하는 것,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겨를 없이 모든 판단을 타인의 시선으로 돌려버린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그렇게 살아왔고 여태까지 내렸던 모든 결정이 과연 타인의 시선을 모두 배제하며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이냐? 라고 물어보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작게는 가족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 그리고 어리석게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형체없는 대중의 말이 진실인듯 삶의 잣대인 듯 믿어왔었던 것 같고 그것들이 알게 모르게 내 선택에 영향을 미쳐왔었다.

독일으로 가니, 그 모든 것들과 물리적으로 떨어지고 나 또한 인터넷 알고리즘을 한국의 형태없는 대중들과 멀어지기 위해 바꿔서 멀어져서 다른 사회에서 속해져 보려고 노력해봤던 것 같다.

하지만 독일어를 못하고, 그들의 유머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니 막상 다른 사회에 속하는 것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대신 혼자 스스로를 생각하면서 내 생각만 하다보니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잠자고 눈 뜨기전에 들리는 새소리가 좋고, 출퇴근 할 때 보이는 푸른 나무가 좋고, 현상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과 목적을 갖는 문제해결을 위한 몰두가 좋다.

주광등보다는 따뜻한 전구색이 좋고, 까슬한 여름이불 보다는 바삭한 면이불이 좋고, 베르가못 향이 좋다. 끼니를 거르고 운동해서 땀흘리고 샤워하고 몸에 좋은 재료들로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해서 미식행위를 즐기는 것은 너무 좋아한다.

토의를 통한 합리적 의사 결정이 좋고, 늘어지는 것보다는 내가 주어진 일에 대해서 책임감을 갖고 끝내서 성과를 내는 것을 좋아한다. 말은 따뜻하게 하면 좋겠지만 내용은 분명한 것을 좋아한다.

음악은 다양하게 듣는 것을 좋아하지만 특정 분위기를 선호하긴 한다. 생각보다 규칙에 맞게 정리하고, 청소하여 말끔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행복해한다. 내가 알던 음식이나 노래, 미술관, 공원 등 새로운 것을 탐험해보며 편협한 상상의 세계가 확장되는 것도 좋다.

등등 또 알게 된게 뭐가 있을까
이 모든 건 너는 그런 것 같아, 남들이 해보니까 나도 해봐야지 등 이런 타인의 판단이나 권유로 알게된 것이 아닌 나 혼자 찾아낸 나의 취향이고 가치관이 된다.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누리며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삶이 흘러가게끔 선택할 수 있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의 한국에서의 삶은 내가 여지껏 살아왔던 삶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적응하고나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바뀌어 지금과 나의 취향, 가치관이 조금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남들의 판단과는 거리를 두고 내가 진정을 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 행복하게 사려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