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일기-1 (21.11~21.12)

211210 독일 출장을 마치며 (1)

H2쩝쩝박사 2021. 12. 10. 17:12

랩실 후배와 함께 14일간 독일 출장을 왔다.

둘째날까지는 슈투트가르트에 머물며, DLR에 가서 발표도 하고 그쪽 사람들 발표도 듣고 연구실도 구경하고 좋았다. 그런데 그날 독일에 하필 첫눈이 내린 날이라서 너무 추웠다. 커피 마실 곳도 없었어서 DLR이라는 공간이 날씨때문에 삭막하게 느껴졌다.

셋째날부터는 뮬하임에 있는 막스플랑크연구소에 머물며 약 10일동안 실험을 진행했다. 10일동안 느낀것이 참 많았다.

첫번째로는 생활방식.
독일사람들은 참 밀도있는 삶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 담당 박사님은 점심도 안드시고, 아침일찍 출근하여서 열심히 일하고 오후 일찍 퇴근하신다. 우리는 실험때문에 일찍 퇴근 할 수는 없었지만 6시쯤에는 되도록 퇴근했다. (6시 이후에 실험실에 남아 있을 경우에는 이름을 적어야하고 9시 이후까지 실험실에 남아있을 수 없었기 때문) 아침 일곱시쯤에 출근해서 점심 간단히 먹고 저녁 6-7시에 퇴근하고 나니 하루가 너무 밀도 있었고 일의 진척도도 한국이랑 비슷한것 같았다. 초반에는 피곤해서 퇴근하자마자 잠들었지만, 나중에는 저녁도 만들어먹고 장도보고 맥주도 먹고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즐겼다. 후배랑 논의해봤는데,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한국과 비교해봤을 때, 이건 단점이 없는 그냥 정답의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연구만 하는 삶.
한국에서는 연구만 할 수가 없었다. 결제며 연구비며 보고서 이런거 왜 이렇게 신경쓰고 살아야하나 너무 짜증난다. 주어진 일만 해도 하루가 짧은데 교수님은 항상 마음을 바꾸셔서 일이 몇십배는 더 생기는 느낌이다. 그래서 출근은 아침일곱에 하지만 며칠은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한국에서 해야할 잡일을 했다. 그렇게 기분 구린 시작을 하고, 연구소에서 아무생각없이 실험에만 집중해서 연구를 하면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탈출해야겠구나! 더 이상 학교에 머물며 교수님의 변덕과 잡일에 불평불만하면서 수명깎아먹기 싫고, 나도 내 연구에만 집중하며 연구를 하고 싶다.

세번째, 화려한 크리스마스.
독일의 겨울은 낮이 짧다. 그래서 오후 다섯시만 되도 어두컴컴하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이 집에 걸어둔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더 반짝반짝 빛난다. 크리스마스마켓이라고 마을 중심가에 설치하는 노점들이 있는데 아기자기한 소품도 팔고 먹을 것도 팔고 사람들은 거기서 잡담과 술을 즐긴다. 이것이 다 밀도 있는 삶이 가능하게 만든 문화겠지. 집 밖의 이방인이 본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린 독일 가정집들은 되게 행복해보이고 좋은 추억들만 생길 것 같은 가족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유도 있어보이고…! 주말에 여행삼아 갔던 쾰른과 뒤셀도르프는 이보다 규모가 큰 크리스마스 마켓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진짜 많았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진이 빠졌지만 장식과 불빛들이 참 아름다웠다.

네번째,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해외 포닥을 하기 싫은 이유가 사실 한국의 편의성과 음식 그리고 친구들 때문이었다. 혼자 있으면 좀 외로울 것 같긴한데 출퇴근 시간 맞춰서 오빠한테 연락하면 되고, 한국 새벽시간은 내가 일하는 시간이 또 괜찮은 듯 했다. 먹는 것도 뭐 삼겹살도 구워먹을 수 있고 내가 노력하면 어느정도 갈증은 해소될것같고 영어는 좀만 더 노력하면 될 것 같고…!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아주 좋소!

네가지의 큰 깨달음이 있었다. 처음에는 괜히 후배따라온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에서는 해볼 수 없는 경험과 생각들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기 계시는 한국 여자 박사님을 보면서 또 든 생각이, 연구도 중요하긴 하지만 내가 어디에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경험이 부족한 나는 이제 학교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볼 때가 된 것 같다!

다음 일기는 독일 사진을 중심으로 일기를 작성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