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에 나에게 인턴 친구가 붙었다.
해야 할 실험이 많았던 터라 실험일정만 잘 짜면 아주 서로에게 좋은 기회다.
그 친구의 첫인상은 인상 깊을 정도로 좋았다. 여지껏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웃음에 인색하지 않은게 좋아보였다. 내가 영어를 버벅거려도 다 이해해주며 같이 열심히 일 하고 있었는데 문득 이 친구의 국적이 궁금해졌다.
분명히 중동계 사람같은데 혹시 독일인이랑 혼혈이라서 독일 국적일 수도 있지않을 수도 있을까 그럼 내가 국적을 묻는게 실례 아닌가 하고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가 그룹리더가 그냥 물어보는거 보고 아 괜한 걱정을 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알고보니 팔레스타인 출신이었다. 그래서 지금 전쟁에 대해 열을 내며 말하는게 뭔가 슬펐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사실 이스라엘이랑 팔레스타인 전쟁 원인 조차 잘 모르고 있는것이 부끄러워져서 그것에 대해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그것을 알고나니 세계의 종교와 역사가 궁금해졌고 그러다가 한동안 퇴근 후 세계사에 대한 영상과 글을 엄청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이걸 어느정도 보고 나니, 우리나라는 유라시아 대륙 끝단에 있는 지리적 특성때문에 단일민족국가이고 그러다보니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언어나 문화 종교의 교류가 적고 현재까지 그 특징이 유지되고 있어 세계적 정세에 둔감하구나 (적어도 나는)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저런 중동국가들이나 유럽권은 최소 2000년동안 서로 합쳐졌다가 나뉘어 지고 종교라는 명목하에 형제국가가 되었다가 싸우기도 하는 걸 보니 국가간 외교 상황이나 언어의 다름이 살결로 바로 느껴져 다른 문화나 언어를 체득하는게 수월하다고 느껴졌다.
이 친구만 해도 총 5개의 언어를 할 줄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 연구실 사람들 모두 대부분 비독일 국가 사람들인데 자기가 살던 국가에서는 현재의 목표를 이룰 수 없거나 본인이 생각하는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타국까지 용기내어 왔다는 것이 문득 멋있다고 느껴졌다. 앞서 말한 우리나라보다는 유럽이나 중동권 사람들은 서로 교류가 이미 잦았어서 이주 결심에 대한 장벽이 낮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오랜세월 일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열정을 쏟는게 멋진 일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독일이 잠시 머무는 공간이 아닌 평생 있어도 될 곳 처럼 느껴졌다. 내가 너무 우물 안 개구리 처럼 살았던 것 같다. 세상이 이렇게도 넓고 다양한데, 우물 속의 기억이 그렇게 좋지도 않았음에도 매일같이 우물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우물 밖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영어도 영어지만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주말에 카페에서 독일어 공부를 호기심과 저런 생각의 흐름때문에 한번 시작하게 되었는데 새로운 언어의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지 처음 알았다.
알파벳과 읽는 법을 알게 되니 공부를 마치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는데 헬스장에 있는 경고문, 간판 등등을 뜻은 몰라도 모두 소리 내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영어 회화도 더 잘하고 싶어져서 최근에는 아침마다 영어회화 수업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드라마틱하게 영어를 더 잘해지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쓰는 어휘량이나 문장 수가 조금씩은 많아지는 것 같다.
그 인턴 친구 덕분에 좋은 깨달음과 공부의 동기를 얻을 수 있었다. 고맙다 친구야. 이런 말을 영어로 당장 다 하지는 못하지만 노력해보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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