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동안의 한국에서의 휴가는 이상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구글 캘린더에 빼곡히 적어둔 스케쥴은 계획적으로 보였지만, 즉흥적으로 또 다른 약속을 잡고 보고싶은 사람이 생겨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고속버스에 몸을 내던지기도 했다.
그럴 계획은 없었는데 광주에서 2박3일 동안 온갖 조롱과 야유를 보내며 신나게 놀아놓고, 헤어지고 택시를 타자마자 눈물이 폭포처럼 우수수 떨어졌고 부은 눈으로 국밥을 먹고 후배를 출근 시키는 차 안에서 무심코 튼 노래의 가사가 우리의 얘기가 같아서 눈물이 또 와장창 흘러나왔다.
후배가 준 졸업논문의 acknowledgement는 분명 영어로 써져있었는데 우리 수전해 팀 카톡방이름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이 친구와의 길고 보람찼던 추억들이 생각나서 엉엉 또 울면서 이런 내가 웃겨서 울다가 웃었다.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비슷했다.
가끔 내 제스쳐나 행동이 특이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휴가 마지막날 그 이유를 비슷한 행동을 하는 엄마와의 마트 산책을 통해 갑자기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생각이나 결정, 웃음코드나 취향, 행동방식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닮아있었다.
서로 일면식 없는 사람들인데도, 어제 만났던 오빠가 추천했던 오래된 노래들은 그 다음날 만난 사람과 함께 산 앨범안의 수록곡들이었고 그 앨범의 내용은 마치 내 마음같았다.
지금 당장 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면 이번 휴가 나날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느낌들이 들었다.
또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와는 달리 솔직하고 좋은 말만 해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도 계획과 다른 감동을 받고 말았다.
우리의 만남이 혹시 나의 일방적인 애정 혹은 수직적 문화에서 온 것은 아닐까하고 마음 속 어딘가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게 아닌 것을 이제서야 알았고, 교수님의 바램과는 다른 방향으로 내가 진로를 설정하는 것이 교수님을 극대노하게 할 것이라는 나의 우려는 아주 틀렸다.
난 드디어 교수님의 불안함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고, 두시간 남짓한 교수님과의 커피타임에서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인간적인 행복과 성장을 바란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이런 생각들은 교수님과의 만남 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또 나를 울게 만들었다.
독일에서의 삶은 나를 안정적이고 건강하게 만드는데 많은 기여를 했지만, 한국에서의 3주는 내 삶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결국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이고 그것이 나의 행복한 기억과 지금의 나를 만들고 미래의 어떤 선택을 할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밌고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어서 감사하고 또 언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어서 다행이다.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봐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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